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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여행을 계획할 때 여러분은 어디를 먼저 검색하시나요? 아마 십중팔구 중앙시장이 나올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강릉에서 거의 2주를 지내고 나서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관광객이 가는 곳과 현지인이 가는 곳은 생각보다 꽤 다르더라고요. 오늘은 강릉 휴가 마지막 날, 제가 실제로 돌아다닌 루틴을 그대로 풀어드리겠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는데, 돌이켜 보면 이 하루가 2주 중에 가장 많이 생각나는 날이 됐습니다.

관광객은 중앙시장, 현지인 체험은 서부시장
강릉에 가면 대부분 중앙시장을 먼저 찾으시죠. 인터넷에도 강릉 맛집 하면 중앙시장이 먼저 나오고, 관광 안내에도 빠지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네 번, 다섯 번씩 찾아간 곳은 서부시장이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어요. 일단 숙소에서 가까웠고, 무엇보다 그 평상 문화가 진짜 좋았습니다.
여기서 평상이란, 시장 한켠에 놓인 낮은 나무 평상으로, 그 위에 앉아 막걸리나 동동주에 전 한 장 시켜놓고 쉬는 방식을 말합니다. 계곡에 놀러 가서 닭볶음탕에 막걸리 한 잔 하는 그 느낌, 아시죠? 서부시장에서 딱 그 기분이 났습니다. 제 일행은 이 공간을 유독 좋아했는데, 막상 저도 앉아 있다 보니 뭔가 왠지모르게 힘 빠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좋은 의미로요.
그날 건배사가 "고생했습니다"였습니다. 2주가 너무 빨리 갔다는 말도 나왔고, 나중에 나이들어서도 이런 데 맨날 와서 막걸리 한 잔 놓고 전이랑 먹고 있지 않을까, 그런 얘기도 했습니다. 얼마 안 남았다고 우스갯소리도 했지만, 사실 그게 진짜 바라는 노후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그 평상에서 한 시간도 안 앉아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장면이 제일 오래 남았습니다.
- 서부시장 특징: 한적하고 현지인 위주의 분위기, 평상에서 막걸리·동동주·전 등을 즐길 수 있는 구조
- 중앙시장과 차이: 관광객 밀집도가 낮고 가격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한 편
- 추천 이유: 계곡 평상 감성을 도심 시장에서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
강릉 옥수수 빙수와 카페 이야기
막걸리로 배를 채운 다음 빙수를 먹으러 갔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 시점에 빙수가 전혀 당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먹은 옥수수 빙수가 너무 맛있어서 여러분께 소개드리고 싶었고, 그게 이유가 됐습니다. 배부른데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 게 블로거의 숙명인가 싶기도 했고요.
옥수수 빙수는 처음엔 조금 특이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옥수수 빙수란, 강릉 지역에서 여름철 제철 재료인 옥수수를 활용해 만든 빙수로, 단맛과 구수한 맛이 공존하는 로컬 스타일 디저트입니다. 이미 전날 먹었으니 이번엔 참외 빙수도 고려해봤지만, 결국 다른 메뉴로 넘어갔습니다.
그다음 들른 카페가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보통 카페에 오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반사적으로 시키는 편인데, 그날은 메뉴 이름이 하도 재밌어서 그냥 달달한 걸로 골라버렸습니다. 제가 시킨 건 '에스프레소 목성'이었고, 함께 간 사람이 시킨 건 '블랙 위도우(검은독거미)'였습니다. 여기서 특이한 음용법이 있었는데, 빨대로 마시지 말고 젓기만 한 다음 통째로 입으로 마시라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마시니까 음료 층이 한꺼번에 섞이면서 맛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리고 카페를 나오다가 위층에 꽃집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장님이 카페와 꽃집을 둘 다 직접 운영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기념품으로 모자도 하나 샀는데, 나오면서 "진짜 잘 산 것 같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강릉 감성을 하나 들고 간다는 느낌이었달까요.
안목 커피거리에서 쿵따리 샤바라가 들려왔습니다
내일이면 퇴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바다에 인사하러 갔습니다. 이후 외국에 나가면 동해 바다를 몇 년은 못 볼 수도 있으니까요. 안목 커피거리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안목용 선물상점'이라는 귀여운 간판도 보이고, 괜찮은 소품들도 있어서 구경하다 나왔습니다.
여기서 안목 커피거리란, 강릉시 안목항 인근에 형성된 커피 특화 거리로,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강릉의 대표 명소입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그때 어디선가 '쿵따리 샤바라'가 흘러나왔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따라 불렀는데, 가사를 제대로 들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슬픈 노래였습니다. "누구나 세상을 살다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야 되고, 이별을 나누면서 이렇게 우린 살아가고". 어릴 때는 그냥 신나는 노래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가사가 그렇게 슬플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 흐름에서 갑자기 예전에 제일 좋아하던 가수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김창완 님이 작사·작곡한 노래였는데, 어렸을 때 테이프를 사서 가사를 직접 손으로 적어가며 다 외웠을 정도였습니다. "철저하게 원숭이들 말라비틀어진 나무 위에 놀고 있네, 추억들은 사라져가고". 이 가사를 다시 읊으면서, 진짜 기가 막히게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처: 벅스뮤직)
모래를 손으로 쥐었다 놓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잖아요. 그걸 보면서 문득 이게 욕심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꽉 쥐려고 할수록 더 빠져나가는 것들. 바다 앞에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휴가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감수성이 좀 과해졌던 것 같기도 합니다.
짐을 다 싸고 나서 "우리는 자유로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한 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유명한 맛집을 다 정복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서부시장 평상에서 막걸리 한 잔, 먹어야하는 숙명같은 빙수, 이름이 특이한 카페 음료, 흘러나오는 옛 노래. 이게 전부였습니다. 강릉에서 보낸 마지막 하루가 딱 이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여러분도 어딘가에서 이런 하루 하나쯤 만들어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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