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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고심해서 어렵게 내린 결론이었는데, 정작 그 누군가가 제가 자기를 싫어해서 그런것 같다고 오해하는 상황을 자주 겪어봤습니다. HSP가 가지고 있는 정교함이 오히려 오해의 씨앗이 된다는 점인데 직접 겪어보면 상당히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또 열심히 억울함을 풀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오해가 고착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단순히 "예민한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끝내기에는, 그 내부에 HSP만의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메커니즘과 해결방법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표정 오해의 구조
저는 어릴 때 부터 학교 선생님이나 어른들에게 '화나거나 기분이 나빠보이는 표정'이라며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그냥 학교 청소 시간에 내가 해야할 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처리하면 좋을 지 생각하고 있었을뿐인데 말입니다. HSP의 핵심 특징 중 하나는 감정의 공명이 매우 강하다는 점입니다. 감정의 공명이란 타인의 분위기, 눈빛, 제스처 같은 비언어적 신호들이 본인 내면에 그대로 전달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이 많은 모임, 회의, 처음 가는 자리일수록 이 전달값이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뇌가 처리해야 할 정보가 급격히 많아지면 자동적으로 출력을 줄입니다. 리액션이 줄고, 표정이 굳고, 눈빛이 한 곳에 고정됩니다. 예를 들어 불편한 팀 회식 자리에서 과장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겠다고 갑자기 나의 개인사를 물어볼 때, HSP인 저는 그 순간 공개적인 자리에서 나의 개인사를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 해야하는지, 분위기에 어울릴만한 가벼운 이야기면서 듣는 사람들이 흥미로워할만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계산이 머릿속에 시작됩니다. 머릿 속이 복잡하니 당연히 표정이 굳게되고 그 표정을 본 과장이 '너무 곤란하면 대답하지않아도된다'고 말을 해버리면서 그 자리에서 저를 사회부적응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당황스럽고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상세히 내 생각을 설명하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더 많이 생각할수록 더 냉담해 보일뿐 다른사람들은 나의 사고구조에 깊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오해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HSP가 타인에게 '생각 중입니다'라는 간결한 신호를 보내는게 해결책이라고 유튜브 영상에서 본 적이있는데, 사실 실제 상황에서는 그런 신호를 보내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음, 글쎄요'나 '지금 당장 답변드리기 어려우므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같은 상황을 모면하기위한 뉘앙스의 말을 하는게 더 현실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출처: Psychology Today — HSP 기초 개념)
의도적 방치 혹은 내버려두기
어느 심리상담 관련 유튜버는 도가 철학자 장자의 우화에서 다른 것을 얻기위해 버려진 인, 의, 예, 이 세가지에 주목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장자가 말하는 인(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의(義)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 예(禮)는 관계를 절도 있게 맞추는 마음입니다. HSP의 특성을 장자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인·의·예를 매우 강하게 타고난 사람인겁니다. 상대가 상처받을까, 내 말이 틀리진 않을까, 분위기를 깨지 않을까를 쉬지 않고 계산하는 것이 바로 HSP가 지닌 강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점도 과하면 탈이 납니다. 저 역시도 한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과도하게 노력했다가 결국 주위에 한명도 남김없이 모두를 놓쳐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학창시절에 반에서 유독 마음이 쓰이던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늘 수줍고 본인의 의사표현이 어렵고 화를 내야하는 일에도 웃기만 해서 다른 친구들이 친하게 잘 지내면서도 속으로는 바보라고 놀리는 듯한 오묘한 분위기가 형성되는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보이지 않는 차별에서 그 친구를 구해주고자 친하게 지내고 챙겨주고 매일 등하교를 같이하면서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2년동안 둘도없는 친구가 되어 학창시절을 지내면서 둘 이외에 모든 친구들에게서 점차 멀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그 친구는 가까운 사람에게는 싫은 점, 불편한 점을 서슴없이 말하고 화도 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의 오만한 생각때문에 그 친구와 순수하게 친밀한 관계를 쌓을 수 없었고, 결국 그 친구가 저와 단절되기로 선언하면서 저는 당시 하나뿐이던 친구를 잃고 절망하며 남은 학창시절을 보내야했습니다.
그래서 장자의 말씀을 빗대어 제 생각을 이야기 하자면, 억지로 관계를 맺거나 상대에게 맞추려 할수록 관계는 더 멀어집니다. 내 몸의 감각, 상대의 반응, 관계의 분위기를 처리하고 해석하고 최적화하려는 습관을 잠시 내려놓고, 또 관계가 복잡 할 수록 엮이려 하지말고 홀로 초연해지는 게 HSP로서 현명한 판단입니다. 내 스스로가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모두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베풀줄 알고 관계를 맺고 끊을 줄 알면, 자연스럽게 또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는게 섭리라는 것을 저는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Zhuangzi
아무것도 하지않는 전략
저도 어릴 때는 노력하지 않으면 원하는 관계를 얻을 수도, 지속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줄여서 '무위'라는 노자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무위란 단순히 아무것도 안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억지로 만들어내는 행위를 멈추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상태에 자신을 맡기는 것을 뜻합니다. 저같은 HSP들이 가장 지치는 부분이 바로 관계를 위해, 상대가 불편할까봐 맞춰주고, 맞춰주다 보니 상대는 우리가 잘 맞는다고 착각하게 되어 불편함을 표현하면 "예민하다"라는 말을 듣는 악순환 구조입니다. 이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사실 더 잘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맞추는 행위 자체를 멈추는 것이라는걸 저는 성인이 되고 난 한참 뒤에 깨달았습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점은 나의 모순되는 마음 역시 받아들이고 내버려둬야 한다는 점입니다. 배려하고 싶은 나와 내 마음대로 굴고 싶은 나, 예의를 지키고 싶은 나와 무례하게 행동하고 싶은 나, 이 모순들이 사실 모두 나라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대나무도 곧으면 부러진다는데, 내가 대쪽같이 스스로 정한 한 가지 신념만 가지고 평생 살아가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HSP는 하루에 한 번이상, 상대의 반응을 해석하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저는 오늘도 누군가의 무례한 행동에 '내가 뭘 잘못해서 나에게 화풀이하는건가'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얼른 '원래 저 사람은 행동이 좀 거칠고 투박한가봐 '라고 바꿔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것이 무위, 내버려두기의 시작입니다. 처음엔 굉장히 불안합니다. 그런데 그 불안도 방치해보면, 생각보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됩니다.
더 많이 생각했는데 냉담하다는 말을 듣고, 더 조심했는데 소극적이라는 말을 듣고, 꾹 참다가 한마디 했는데 예민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더 잘 설명하고, 더 잘 표현하고, 더 잘 맞추려는 노력이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만드는 구조라는걸 명심해야합니다. 억지로라도 잊었더니 자유로워졌듯, 가끔은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삶을 방치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냥 한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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