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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일지

예민한 사람의 습관 (반추, DOES, 호흡법)

고도민 2026. 10. 10. 09:20

목차


    저는 자려고 누우면 머릿속에 '그 때 이렇게 할 걸'이라는 생각이 가득차면서 거의 30분 정도는 잠들지 못하고 후회하는 시간을 매번  보냅니다.  누군가와 갈등상황에서 좀 더 똑부러지게 말하지 못했던 것, 혹은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버럭 짜증 냈던 일들을 되새기면서 다음엔 더 유연하게 대처해야지 하는 그런 생각을 반복해서 하게됩니다. 하지만 내 생각만큼 그런 갈등상황은 자주 일어나지 않기때문에 결국 되새긴 것들이 까먹어질 때쯤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스스로에게 실망합니다. 예민한 성격을 가진 분들이라면 이 감각이 낯설지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걱정이 아니라 반추

     반추는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없음에도 "그때 왜 그랬을까", "다르게 했으면 어땠을까"를 반복해서 곱씹는 사고 구조입니다.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뇌가 루프에 걸린 상태에 가깝습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내려고 머릿속에서 그 장면을 반복 재생했습니다. 나에게 합리적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상대방에게 내가 순간의 억울한 감정을 덜어내고 이성적으로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해서 좀 더 세련된 방법으로 그 갈등상황을 해결하고 싶다는 일종의 환상을 품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만큼 내가 그런 갈등상황을 자주 마주하지도 않을 뿐더러, 갈등상황은 예고없이 찾아오고 또 매번 사람과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혼자 머릿속으로 반복적으로 생각을 한다고해서 크게 소용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그때 그 상황이 재생되는거라 의식적으로 신경을 돌려서 다른 생각이 나도록 노력해야 겨우 반추를 멈출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반추가 계속되면 특정 장소에 가거나, 비슷한 이미지의 사람을 만났을 때 불안해지거나,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숨이 막히는 느낌이 납니다. 반추가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고, 그러면서  불안증과 우울증으로 번지게 됩니다. 

    예민한 사람의 매커니즘, DOES

    "나만 이렇게 생각이 많은 건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예민한 사람의 뇌는 구조적으로 모든 자극을 더 깊게 처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DOES란,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의 네 가지 특성을 줄여 일컫는 말입니다. 먼저 D는 Depth of Processing, 같은 자극이 들어와도 뇌에서 오래 머물면서 더 깊게 처리합니다. 남들은 흘려보낼 일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O는 Overstimulation, 과자극으로 빛, 소리, 냄새 같은 외부 자극을 훨씬 강하게 받아들입니다.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고, 밝은 빛도 지나치게 눈부십니다. 작은 자극도 뇌에 강하게 각인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하고 되새깁니다. 다음 E는 Emotional Reactivity, 감정 반응으로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감정에 몰입하는 특징입니다. 상대방이 슬프다고 하면 함께 빠져들고, 누군가 한마디 상처를 주면 그 원인이 나에게 있는건 아닌지 오랫동안 확인하며 되새깁니다.
    마지막으로 S는 Sensitivity to Subtleties, 미세 자극 감지로 남들이 쉽게 지나칠 사소한 변화도 금새 알아챕니다. "머리 염색했네요"처럼 작은 변화도 즉시 눈에 들어오고, 그 기억이 불필요하게 오래 남아 반추를 일으킵니다.
    저는 모든 특성이 강하지만 그 중에서도 감정반응이 가장 강한편이라,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람의 표정 변화까지도 알아차려서 혹시 내가 뭔가 불편감을 줬는지  되새길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HSP의 특성을 알고 나서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이건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뇌가 원래 이렇게 작동하는 거구나'라고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 이해 자체가 이미 작은 해방이었습니다.  

    걱정을 잠시 끊어내는 호흡과 마사지

    걱정을 머리로 해결하려 할수록 더 깊이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사고 흐름이 점점 더 몰입되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가장 먼저 호흡을 정리하는 방법을 씁니다.  4초 동안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4초 동안 숨을 멈췄다가 다시 6초 동안 천천히 내쉬는 호흡법으로, 이것을 1분 정도 반복하면 호흡에만 집중하게되면서 머릿속에 들던 생각이 자연스럽게 잦아들고 긴장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여기에 승모근과 흉쇄유돌근 마사지를 함께 하면 몸의 긴장이 눈에 띄게 풀리는걸 경험할 수 있습니다. 흉쇄유돌근은 목 옆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근육으로, 목에 힘을 주면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부위입니다. 손가락으로 이 근육을 약 30초동안 지긋이 눌러주고, 반대편도 똑같이 해주면 됩니다.
    저는 걱정이 많을 때 ,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고자 몸의 근육을 과도하게  경직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리를 꼬아두거나 어깨를 둥그렇게 말게되는 편입니다. 그럴때 앞서 말한 호흡과 마사지를 하고 의식적으로 팔다리에 힘을 빼고 툭 내려놓는 동작을 몇 번 반복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몸 전체가 한결 가벼워지면서 생각도 가벼워지는데 도움이 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소량의 카페인도 과잉자극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걱정이 많거나 몸 상태가 예민한 날은 가급적 카페인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평소엔 디카페인 커피는 한 잔씩 마시다가도 기분이 너무 안좋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솟구치는 날에는 카페인 섭취를 자제하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게 다음날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호흡도 해보고, 마사지도 해봤는데 여전히 머릿속이 시끄럽다면, 그때는 일어나서 나가야합니다. 가장 간단하게는 볕을 보며 산책할 수도 있고, 저는 물 속에서 조용히 내 호흡과 움직임에 집중 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수영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이렇듯 HSP는 각자 자기만의 예민함을 해소할 만한 움직임을 취미로 갖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세계보건기구 WHO 신체활동 지침)

    저는 예민한 사람입니다. 오늘도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모르는 사람에게 짜증이 나서 얼굴을 찌푸렸고 그 사람이 저를 보고 예민하다고 보낸 눈빛을 알아챘습니다. 그리고 '내가 성격이 나쁜가?'하고 반추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반추를 해도 쉽게 변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고집센 HSP이기 때문입니다. 사고흐름은 반성하는 듯 해도 실제로 반성해야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왜냐면 이제는 제 도덕적 기준이 남들보다 더 높다는 것을 조금은 알기 때문입니다. 예민한 기질이 짐처럼 느껴지는 분들께, 오늘 글이 조금이라도 가벼운 시작점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