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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일지

HSP의 가족 관계 (감정구별, 과잉자극, 배우자)

고도민 2026. 9. 25. 07:41

목차


    고도민감인들은 누구와 함께 사는지에 따라 집이라는 공간이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자극이 발생하는 공간이되기도 합니다. 부모님이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서는 밖에서 무슨 불편을 겪었는지 큰소리로 하소연을 하기 시작하면 고도민감인은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다가도 '무슨일이지?'하고 조용히 하던일을 멈추고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에 집중하게 됩니다.  불만가득한 목소리가 잠재워질때까지  혹은 그 불만의 원인이 합리적인지 아닌지 판단될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저도 처음엔 이게 공감을 위한 반응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 비슷한 일이 거듭될 수록 그저 감정이 분출되는 곳에서 메마른 곳으로 스펀지처럼 흡수되는 과정이란걸 알게 됐습니다. HSP, 즉 고도로 민감한 사람들이 감정표현이 과잉된 가족들과 살아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감정구별 연습

    제가 말하는 감정흡수란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정도를 넘어서 타인의 감정이 그대로 나의 감정에 전이가 되어버리는 상태입니다. 이 차이는 공감과 동감 중에서 동감, 동일한 감정을 느낀다고 보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 동감에 가까운 감정흡수 과정이  긍정적일 감정일 때는  오히려 시너지가 있어서  타인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 타인의 성공이 나의 성공인것처럼 뿌듯해지기까지해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감정이 밀려 들어오는 순간부터 상황이 달라집니다.  가족들이 지친몸을 이끌고 퇴근하면서 쌓인 짜증을 집에 안고 들어오면 HSP고도민감자는 그게 부모든 형제든 상관없이  표정이나 몸짓만을 보고서도 그 분위기를 감지합니다. 이 감각이 불안으로 이어지고,  상대의 불편한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 눈치를 보고 조용히 할 일 을 하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나에게 감정의 불똥이 튀게되면 오히려 고도민감인인 제가 반응해버립니다. 상대도 저도 딱히 뭔가를 한 것도 아닌데 공격을 주고받은 셈이 되는 거죠. 이런 감정흡수 구조는 가족에게 큰 위기가 닥쳤을 때 더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가족 중 누구 한 사람이 무너지면 다른 가족도 같이 무너져 가족이 전부 다  부정적 감정에 침몰해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이럴 때 해결책은 상대의 감정과 내 감정을  구분지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HSP 고도 민감자들은 본인의 감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게 가장 어렵다는게  바로 저의 경험담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정적 뉘앙스로 예민하다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자기 감각과 감정을 억누르다보니, 스스로의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내 감정을 타자화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저 같은 고도민감자들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분류해서 알아내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상황이 유쾌한지,  무슨일이 일어날거같이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는지, 무언가 뺏기고 무시당한 느낌인지,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지 등 감정을 구체화해서 학습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타인의 감정이나, 바깥의 상황, 분위기는 동물적으로 깨닫는게 HSP이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은 이렇게 의도적으로 파악해야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서 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구분하는 일이 이루어져야합니다.
    요약: 감정 공명은 공감이 아니라 흡수다. 분리하려면 상대 감정보다 내 감정을 먼저 알아야 한다.

    과잉자극이 싸움으로 번지는 순환구조

    다같이 그냥 저녁한끼를 밖에서 먹다가도 고도민감인은 폭발합니다.  멀리 있는 반찬을 권한다고 접시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아빠, 그걸 말리느라 잔소리하는 엄마, 부족한 건 없는지  확인하러 다가온 직원, 그런 부모를 말리는 형제의 짜증섞인 말소리, 언성이 높아지니 주변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 HSP인 저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이 핑 도는 듯 하더니 "다 조용히 해!"하고 뾰족한 말이 튀어나옵니다.  가족들 입장에서는 영문도 모르고  꾸짖음을 들었으니 황당하기만 합니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한 감정을 토로하며 다투게 됩니다.  고도민감인은 일반인보다 동일한 자극을 두세 배 이상 강하게 처리하기 때문에, 자극이 본인의 한계치를 넘으면 몸이 먼저 반응해버립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뇌가 늘 활성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외부 자극이 조금만 더 쌓이면 금방 한계에 도달하는 겁니다. HSP로서 늘 느끼는 제 상태는 마치 물 잔에 물이 넘칠듯 말듯한  위태로운 상태가 일상적으로 이어지고 외부자극이 한번에 와르르 쏟아지면 바로 넘쳐서 주변을 물바다로 만들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러 사람이 모이는 명절같은 상황이 전형적입니다. 시댁에서 종일 자극을 받고 돌아온 HSP 아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 혼자 있고 싶어"라고 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뭐가또 불만이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도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HSP가 과부하 상태인 것뿐입니다. 갈등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서운한 부분을 털어놓는 대화가 이어지다 보면 HSP인 저보다 상대방이 먼저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면 HSP는 나만 잘못한 사람이 된 것같아 억울함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대화를 대충 종결하고 혼자 감정을 처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상대는 오해가 풀릴때까지 이 상황을 떠나지 않기를 요구하면 그때부터 문제는 심각해지고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집니다.  밀접한 관계일 수록, 그리고 망치고 싶지 않은 관계일 수록 고도민감인은 상대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부분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알려야합니다. 그래야 당장 처한 자극 과잉 상태를  막고 여기서 분출되는 부정적 감정이 상대에게 잘못된 방향으로 도달하는 것을 방지할수 있습니다.
    요약: 과잉 자극 반응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가 오해하기 전에 내 기질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먼저 알려야 한다.

    HSP에게 맞는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

    논어에 보면 군자는 나와 네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화합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HSP 분들이 배우자를 고를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 나와 다른 사람을  수용하는 방식입니다. 본인의 기준이나 가치를 상대에게 관철하려고 하는 성향인지, 상대의 다른 점도 나의 그것처럼 존중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지 충분히 시간을 두고 관계를 맺다보면 저절로 알게되는 것들입니다. 하나 더 말하자면 상대가 HSP의 공감과 헌신적인 태도와 배려를 받을만한 사람인지, 받은 배려와 헌신을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인지도 확인해야합니다. 그래야 주는 사람도 받은 사람도 서운하게 여길 일이 없어 균형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고도민감자들은 쉽게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지만, 한 번 관계를 맺으면 굉장히 심도있게 대합니다. 상대가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거나 능력이 모자라도, 나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건네거나 내 힘든 것을 조금이라도 알아주면 큰 감동을 받고 그 관계를 끝까지 이어가려 합니다.  보통은  나와 배우자가 서로 다른 성향이어야 부족한 점을  채우기에 적당하고 오래가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HSP 고도민감자들의 경우에는 본인들과 같은 정도는 아니여도 비슷한 정도로 배려를 해주고 마음을 쓰고 또 받은 만큼 돌려줄수 있는 그런 비슷한  사람이 배우자로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자기중심적이거나 통제적인 성향의 사람을 만나면 고도민감인 혼자 완전히 착취당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합니다. 그래서 고도민감인은 본인의 예리한 감각을 고도로 훈련하여 본인에게 해로운 사람과 이로운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 평생의 과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약: 나의 다름을 인정해주는 사람인지, 황금률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HSP의 배우자 선별 핵심 기준이다.

    HSP로 살아가면서 관계가 외롭고 힘들게 느껴졌다면, 예민한 감수성과 별개로 느껴온 감정이 내 것인지 상대 것인지 구분되지 않은 채로 그저  내 안에 설명되지 않은 감정들만 계속해서 담아온 결과입니다. 먼저 내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리는 것, 그다음 가까운 사람에게 알리는 것, 그 다음 나의 배려를 받을 만한 사람을 고르는 것. 이 순서가 지켜질 때 비로소 채워지는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