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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주일 7일 중 주말을 뺀 5일을 매일 아침 출근하고, 저녁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기력이 남아있지 않아서 남들다하는 건강관리하러 헬스장에도 못 간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다들 똑같이 매일 출근하는데 왜 너만 더 힘들어서 퇴근하고 아무것도 안하려고 하냐며 다른사람들 눈에는 그냥 게으른 사람이라고 비춰져서 자괴감에 빠진적도 한 두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고도민감자의 하루는 다른 사람들 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회사에서는 옆자리 동료의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안 좋다는 걸 알아차리고 배려하느라 주의를 쏟았고, 출퇴근길 만원 대중교통에서 옆자리에 딱 붙어서서 가는 모르는 사람의 작은 몸짓에도 내가 불편하게 했나하고 촉각을 곤두세웠고,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의 애정어린 잔소리에도 하루종일 참았던 감정이 폭발합니다. 고도로 민감한 사람, 즉 HSP에게는 남들이 그냥 흘려보내는 자극들도 전부 선명하게 뇌리에 박힙니다. 그게 이들이 회사만 다녀오면 아무것도 할수 없는 에너지가 고갈된 원인입니다.

번아웃이 반복되는 이유, 과잉자극
정말로 퇴근 후에는 아무것도 할 기력이 없다는 게 누군가의 핑계나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다못해 밥을 차려먹거나 씻는 것 마저도 너무 힘들어서 퇴근 후 해파리처럼 늘어져 누워있다가 밤이 늦어서야 겨우 몸을 일으켜 급하게 씻고 다시 잠드는 삶을 저는 백번 이해합니다. 출근과 출근을 위해 밥을 먹고 씻고 잠드는 이 생활이 반복되면 결국 자기 발전이나 취미 같은 건 꿈도 못 꾸게 되고, 회사출근 이외에는 나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무기력하게 느껴져 우울증으로 이어지기까지 합니다.
HSP가 유독 직장 생활에서 힘든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한 가지 일에서 다른 일로 빠르게 전환하는 과정이 자극의 미해결로 받아들여져 해소될때까지 계속해서 머릿속에 자극의 전원이 켜지기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문의전화를 받다가 메일을 쓰고, 팀장님이 나타나 묻는 것에 답변해야하고 또 옆자리 동료가 시시콜콜 하는 이야기에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고 이 모든게 가능하려면 어떤일이든 완결 짓지 않고도 넘어갈수있는 둔감성이 기초가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고도민감자는 하나의 자극이 미해결된 채로 남으면 거기에 사고가 매몰되어서 쉽게 다음으로 닥쳐오는 일을 받아들이지못합니다. 회의 도중 누군가의 말 한 마디가 이해되지 않으면, 팀장님의 지적이 납득이되지 않으면, 마음도 정신도 그 자리에서 멈춰버립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미해결 과제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미해결 과제란 완결되지 않은 사건이나 감정이 내 마음속에 계속 떠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HSP는 이런 미해결 과제가 일반인보다 훨씬 빠르게, 훨씬 많이 쌓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삶의 기저에 낮은 수준의 불안을 깔아 놓게되면서 자극이 발생하지 않는 순간에도 지속적으로 에너지가 소모되기때문에 일상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번아웃으로 이어지게되는 겁니다.
요약: HSP의 번아웃은 게으름이 아니라, 자극이 미해결 과제로 쌓이면서 에너지가 과잉 소모되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고도민감자의 완벽주의
제가 최근에 본 릴스에서 '인간이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평소에 불편함을 참고 감수하면서 일상을 살아내다보면 별거 아닌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거나 이성을 잃고 선을 넘는 행동을 하게된다는 내용을 접했습니다. 저는 그 짧은 영상을 몇번이고 돌려볼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게 제가 살아내는 하루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었거든요. 하루 종일 사람을 상대하고, 똑같은 이야기를 설명하고, 그마저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인내하고, 하루에도 수십번 널뛰기하는 감정을 다스리다 보면 퇴근무렵에는 의지력이 바닥이 납니다. 몸과 마음이 넝마가 된 채로 집에 돌아가면서 오늘은 힘들었으니 이정도는 먹어도돼 하면서 몸에 안좋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자극적인 식사와 쾌락을 추구하게되고, 집에 도착하면 가족의 작은 잔소리에도 짜증을 냅니다. 잘 자고 일어난 오전에는 그래도 에너지를 쏟아가며 일을 할 수 있었는데 퇴근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고 내 인내력 또한 정해진 용량이 있다는 걸 몸으로 체감할수 있습니다.. 고도민감자는 이 용량이 소진되는 속도가 둔감한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빠르기때문에 "조금만 더 버티자"는 생각 자체가 위험한 접근입니다.
그런데 왜 HSP는 그 불편한 자극의 홍수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까요. 고도민감자들은 타인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서, 해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완벽주의적 강박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지된 모든 자극에 일일이 반응하고, 모든 관계에서 정보를 유용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는 성향이 있는데 문제는 이런 성향에서 벗어나는 것이 고도민감자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면에는 그것을 인정받고싶은 욕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요약: 미해결 과제가 쌓이는 핵심 원인은 완벽주의와 강박이며, 이것을 내려놓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입니다.
번아웃 해결방법
저는 번아웃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고싶습니다. 하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자극을 덜어내는 방법이고,다른 하나는 충격요법 처럼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해서 수용방식을 바꾸고 반응감도를 인위적으로 낮추려고하는 방법입니다.
먼저 큰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내 자신의 고유성을 무너뜨리지 않는 삶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자극을 덜어내는것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고전적 조건 형성이라는 방법대로 나의 직업, 나와 함께하는 사람, 생활 공간 세가지 환경변수를 바꾸는겁니다. 환경을 완전히 바꾸기 어렵다면, 번아웃이 오기 전에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최선입니다. 누군가와 부정적 감정교류가 이루어질것같다던지 갈등이나 마찰이 생길것같다는 이런 신호가 느껴지는 순간 의지력으로 버티려 하지 마십시오. 버티는 것이 미덕이 아닐 뿐더러 참다가 감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폭발할 경우 별 것 아닌일이 큰 화를 불러오기도합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고객상담을 진행하다가 상대방이 말투가 날카롭게 바뀌면서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에, 곧바로 관리자를 소환해서 그 상황을 내가 해결하려하지않고 적극적으로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적당한 자극을 수용하는 방법으로 자극감도를 낮추고자 하는분들은 그 전에 반드시 해체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해체란 자극에 즉각 반응하고 모든 것을 완결 지으려는 나의 기존방식을 의도적으로 허물어뜨리는 과정을 말합니다.
심리치료에서 자주 언급되는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에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그리고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인상깊은 부분은 둘'을 구분하는 지혜', 고도민감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 구분 능력입니다.
요약: 안전한 삶을 원한다면 환경을 조절하고, 변화를 원한다면 버리는 연습부터 시작하십시오. 핵심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입니다.
지금도 나를 둘러싼 직업, 친구, 가족 등 환경은 크게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저는 제가 가진 에너지의 크기를 알고 다쓰면 어떻게 충전하는지도 알고, 인내력의 총량을 배분해서 사용할 줄 압니다. 자책하던 데 쓰던 에너지를 조금씩 나를 채우는 곳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감각이 민감하다는건 단점은 아니지만, 그 감각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 때 비로소 강점으로 작용할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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